그리스도 중심 읽기 창세기 1 영상입니다. 10분짜리 영상이지만 창세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읽어가야 할지에 대한 좋은 안내의 역할을 해 줄겁니다.
창세기 그리스도 중심 읽기- 창세기 1
창 1
우주와 세계의 시작(창세기 1장) 과 인류의 시작(창 2장)과 복음시대의 시작인 예수그리스도의 탄생(마 1-2장) 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이처럼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 놀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인 것은 그분이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면에서 내가 누구인가? 우리는 또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을 주고 오늘의 삶의 의미를 주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성경을 읽다가 깨달은 점, 도전 받은 점, 느낀 점, 발견한 점, 질문들이 있으면 편안하게 나누어 주시면 더욱 다이나믹한 읽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옳고 틀린 해석을 논하는 곳이 아닙니다. 말씀과 삶이 만나는 지점들을 공유하고 격려하는 공간이 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 1장 26-27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에서 감동이 있었습니다. 26절의 "우리의 형상" 이란 하나님이 복수로 나타나는 첫 단어인데 삼위일체가 성경에 처음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우리" 가운데 성부, 성령하나님과 함께 성자가 계셨기에, 우리는 성경의 첫 장에서 성육신하시기 전의 그리스도를 발견합니다.
아뭏튼 타락전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였나에 다시금 놀라게 됩니다. 비록 타락으로 깨어진 형상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담지하게 남겨두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Happy New Year! 입니다.
창 3-4
창세기 3장은 인간의 타락을 보여 줍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왜 이런 세상인지를 설명해 주죠.
창세기 4장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 가운데 있는 시기와 질투로 인한 살인과 그 폭력성을 적나라게 드러내 줍니다. 인간의 이런 폭력성은 지금도 전세계의 사건 사고들을 접하며 현재 진행 중임을 날마다 확인합니다.
3, 4장에도 복음의 씨앗을 발견합니다.
3장 15절은 최초의 수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바라보진 못했지만, 여자의 후손 (단수- 그리스도)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Crush) 할 날을 고대했을 것입니다. 이 선언이 뱀에게는 저주였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겐 복음입니다.
창세기 3장 이후 요한계시록까지의 모든 이야기는 여자의 후손이 어떻게 뱀의 (사탄) 머리를 깨부쉬는지의 구속의 드라마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탄의 모든 권세를 깨뜨리셨고 승리하셨으며, 재림시에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오셔서 사탄을 불과 유황못에 던져넣고 (20:10), 사망과 음부까지도 불못(the lake of fire)에 던져 버릴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고난과 환난을 당하지만, 이미 승리한 싸움을 싸우고 있기에 강하고 담대하며 계속해서 전투적 교회의 성도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적다보니 좀 길어졌습니다.^^
너무 길어지면 성경보다 제 글이 더 많아질까봐 여기서 뚝 멈춥니다.
할렐루야~
말씀과 함께 충만한 기쁨 누리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창세기 족보 이야기 (창 4, 6, 10장)
오늘은 족보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창세기에는 족보가 여러개 나옵니다. 족보에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담겨 있습니다.
8장까지 나온 족보를 바탕으로 하면,
아담- 아벨(죽고, 4:8)- 셋(4:25)-노아- 셈(6:10) 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11장에 가면 셈의 족보가 다시 나오는데 셈-> 아브라함으로 이어집니다.
이후는 여러분도 잘 아시죠. 아브라함->야곱-> 유다->다윗-> 예수 그리스도 (마 1) 입니다.
3: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약속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족보를 구속사에서 하나님의 "경건한 자손의 계열" 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택하시고 남겨 놓으신 하나님의 경건한 자손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를 오게 하셨습니다.
노아때 처럼 이 악한 세대에서 저와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경건한 자손들을 주님 오실 때까지 보전해 가실 것을 바라보며, 오늘도 소망의 하루를 보냅니다.
창 11
1.
창세기 11장까지 왔습니다.
인간의 죄악으로 홍수로 심판하셨음에도, 그 즉시 죄악상이 발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의인이라 여겨진 노아의 벌거벗음과 그 죄악상을 들쳐내는 함을 보며 인간에겐 소망이 없음을 확인합니다.
함의 모습을 보며, 죄를 들춰내서 동네방네 알리며 비방거리로 삼는 것을 즐겨하는 인간의 죄성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술취함과 벌거벗음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죄를 까발린 함을 저주하고, 아버지의 죄를 보지 않고 덮어주었던 셈과 야벳에게 복을 선언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 가운데 있는 죄를 보고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2.
11장은 하나님처럼 되려는 인간의 욕망, 하나님을 왕으로 두기 싫어하는 인본주의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벽돌(brick)과 역청(bitumen) 이라는 당대의 과학과 기술을 활용해 하늘에 오르려는 시도는 지금 시대와 정확히 맞닿아 있네요.
하나님의 심판은 언어의 혼잡 (바벨)이 었고, 이 심판은 오순절 성령 강림하실 때 사도들이 각국 방언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에서 회복이 됩니다. 우리가 영원토록 살아갈 하나님 나라에서는 다른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됩니다. 구글이나 AI 번역기 필요없습니다.^^
3.
11장의 셈의 족보는 창세기에서 세계의 시작 인류의 시작에서 족장시대의 시작 (이스라엘)을 알리는 아브라함 가족에 대한 배경을 줍니다.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회복해 가시는 지를 기대하게 됩니다 (이미 우리는 결말을 알지만요).
이번 한 주간도 말씀 가운데 에녹처럼 동행하는 한 주 되시길 기도합니다~
창 12-15
창세기 12장-15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불러서 복에 대한 약속을 주시고 이끌어가시는 내용입니다. 자식하나 없는 아브람에겐 하나님의 약속은 멀고 불가능한 공수표같아 보일 수 있지만, 신약의 저자에 따르면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15:6).
우리는 이미 신약성경이 완성된 복음시대에 있기에 하나님의 이 약속이 어떻게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는지 압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8에서 아브람에게 하신 이 약속을 아브람에게 복음을 전하셨다고 해설합니다.
창 14장에 나오는 멜기세덱 (나의 왕은 의로우시다) 이라는 신비로운 인물을 접합니다. 왕이면서 대제사장이 평화의 왕 (살렘왕), 의의 왕이면서 제사장이 가리키는 인물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히브리서 7장에 신약 저자의 해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창 12-14장에는 복음으로 연결되는 풍성한 내용들이 참 많아서 나누고 싶은 말씀들이 많으나, 여러분이 성경으로 가게 하는 동기 부여정도에서 멈추려고 합니다.
구약을 읽을 때 일차적으로는 본문의 처음 독자의 입장에서 읽어야 하지만, 그 말씀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된 복음의 창으로 이해하는 노력까지 한다면, 성경을 더 온전히 그리고 참 의미를 풍부하게 맛보아 갈 수 있을 겁니다.
창 17
창 15장에서 하나님이 자손을 주실 것을 약속하고 13년이 흐릅니다. 그 사이 아브람은 아내 사래의 말에 동조해서 인간적 방법인 하갈을 통해 하나님 약속을 이루려했으나, 오히려 가정의 고통만을 초래할 뿐이었습니다.
구십구 세때 다시 아브람에게 나타나 언약을 확고히 하지만 아브람은 하나님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17:18) 며 불신을 드러냅니다.
아브람의 믿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조차 아브람에게 의롭게 여김 받을 만한 믿음이 있어서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믿음 주시고 믿음을 자라게 하시고 마침내 이삭을 드리는 믿음의 절정에 (22장) 이르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비록 지금 내 믿음 내 모습이 늘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여기시고 믿음에 믿음으로 최후 구원까지 이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샬롬(peace) 입니다.
창 18-19
1.
아브라함을 통한 약속의 자녀가 나기 전에 인간의 죄악된 행동 가운데 세 민족의 시초가 발생합니다. 하갈에 의해 아라비아 민족이 (이스마엘), 롯의 두 딸의 친부 근친성범죄에 의해 모압과 압목족속이 태동합니다. 이 민족 모두는 하나님의 약속의 경건한 계열의 자손들을 대적하고 이스라엘의 원수가 됩니다.
2.
창세기 19장까지는 아브라함과 사라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약속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를 애타게 기다리게 합니다.
18장의 내용을 보면, 사라 역시 인간의 불능으로 하나님의 전능을 불신하고 아브라함처럼 웃었습니다.
3.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기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가 돋보입니다. 의인 10명이 없어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의 준엄함과 인간의 전적타락과 부패 그리고 선에 있어 전적 불능을 다시 봅니다.
4.
창세기 저자는 롯이 자기 두 딸이 연거푸 술을 먹이고 동침하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두번씩 강조합니다. 그 작은 도피처로 택한 작은 성에서도 술은 없어서는 안되었나 봅니다. 성경을 술을 금하지 않지만, 술취하는 것에 대해선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노아의 술 취함때문에 함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술 취함은 온갖 범죄가 타고 넘어들어오는 발판이 됩니다. 성도는 술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해야 하겠습니다 (충만, 엡 5:18). 성령충만의 비결은 말씀 충만입니다. 우리 오늘 하루만큼은 말씀에 충만합시다.
창 22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기라 (22:8) 이 핵심 주제문장이다. 하나님께 드릴 희생 제물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백성들의 죄를 속죄할 어린 양으로 내어 주셨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께 바칠 제물을 드릴 수 없다. 자기 생명을 드린들 하나님께 지은 죄를 다 속량할 수 없다.
창세기 그리스도 중심 읽기- 창세기 2
창 25-50
창세기 25장부터 50장까지는 야곱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마치 콩가루 집안 같이 위태 위태한 가정사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민족의 시초가 되는 열두 족속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점점 더 구체적으로 보게 됩니다.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그 약속, 너의 후손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겠다는 약속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깨어진 세상을 다시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구속의 큰 그림의 시발점이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지를 보는 것이 성경을 읽는 맛입니다.
하나님의 경건한 계열인 아담-(아벨)-셋- 셈-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 다윗-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늘 머리속 한켠에 담아 놓고 보시기 바랍니다.^^
창 31-32
교활하고 잔머리 대왕같은 야곱이 에서의 살해 위협을 피해 외삼촌 라반에게로 갑니다. 거기서 자기보다 더 야곱스러운 '산'을 만납니다. 자기보다 더 속이기를 잘하는 자였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라반을 속이고 도망치는데 서로 속고 속이는 대전같습니다. 그런 와중에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야곱을 보존하시고 약속하신 땅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자신의 고생한 이야기를 하는 걸 들어보면, 야곱이 20년동안 얼마나 지독한 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인생의 말년에 바로앞에서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험난한 인생" 이라고 말을했죠.
야곱에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구석이 눈꼽만큼도 없는 자인데 하나님께선 그를 하나님의 거대한 구속사역의 위대한 시작을 해 가십니다. 그는 창세전에 이미 택자입니다. 리브가의 태중에서부터 말이죠. 사도바울은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을 야곱의 출생을 가지고 설명합니다.
로마서 9:10–13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야곱을 사랑하기로 작정하시고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만 설명이 가능한 야곱의 인생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고생일지라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며 감사하는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창 34-45
창 34장
강간과 학살 둘 중 어떤 죄가 더 큰가?
하몰의 아들 세겜이 아무리 못할 짓을 했어도, 시몬과 레위의 속임수와 학살은 정당화될 수 없다. 악한 인간이 스스로 심판자나 복수자가 되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죄악상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사건일 것이다.
이런 자식들의 악함에 대한 야곱의 대응은 어쩌면 더 악한 것인지도 모른다. 야곱은 오로지 자기와 자기 식구 지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외에는 이런 살상극에 대한 죄의 심각성을 말하지 않는다. 자식을 망치고 있는 장본인은 야곱이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자기 민족의 조상들의 스토리를 읽으면서 과연 자랑스러워할 수 있었을까? 시몬과 레위의 악행속에 인류의 잔인성과 폭력성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런 레위 족속에게서 제사장 아론과 모세가 나왔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백성들의 죄를 중보하는 제사장의 직분이 이어진다는 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과 자비만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창 35장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아들들의 악을 허용하신 것임을 알 수 있다. 악한 자를 들어서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본다. 패역한 이스라엘을 더 악한 앗수르와 바벨론을 들어 심판하시고, 다시 바벨론을 페르시아를 통해 심판하셨던 하나님처럼…
11-12절: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로 개명시키시고,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언약을 야곱에게 또 다시 상기시키고 갱신하신다. 수 많은 백성들과 왕과 땅에 대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마침내 도래했다. 지금도 복음전파를 통해 수 많은 주의 백성들이 돌아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며, 주의 재림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기대한다.
35장 전체는 강간, 살육, 장남의 간음, 그토록 사랑하던 아내 라헬의 죽음, 아버지 이삭의 죽음과 매장의 내용으로 인해 붉고 회색 빛으로 색칠된 장 같이 느껴진다.
그 가운데 이스라엘(야곱)의 열두 아들의 이름이 명명되는 건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시작의 신호탄이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열두 제자의 명명을 통해 신약의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이 모든 슬픔은 벧엘로 돌아가야 할 야곱이 밧단 아람을 떠나 세겜이라는 중간 거점에서 주저 앉았을 때 일어났다. 세겜은 야곱에게 번영과 안정과 즐거움을 주는 듯 보인 세상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은 영원한 도성이 있는 천국을 바라보며 계속 전진해야 한다.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건 죄악과 그로 인한 슬픔과 비참함뿐이다. 세상에 주저앉지 말고 하나님의 집인 벧엘로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의 집, 본향을 향해 순례의 길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오늘은 글이 조금 길었습니다)
창 37-42
1.
창세기 25장~36장까지는 야곱이 스토리의 중심이었다면 37장부터 창세기 마지막 50장까지는 요셉이 중심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와 구속사에 있어 참 중요한 인물입니다. 요셉의 스토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은 요셉의 신데렐라같은 인생 스토리와 요셉 자신의 탁월함에 맞춰 영웅스토리나 설교로 만들지 말아야 함입니다. 요셉의 인생을 통해 약속을 성취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그로 인한 요셉의 신앙 고백에 주목하며 읽어나가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부분을 읽는 관점이 그렇지만요.
2.
요셉과 그의 인생은 여러부분과 패턴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해주는 면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의로운 자가 악인에 의해 무고하게 고난받고 죽임 당하는 모습 (다윗왕-> 시편 기자 ->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과 선지자 -> 그리스도) 이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리키는 전형입니다.
3.
그의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신 것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그대로 성취되고 마침내 이스라엘 민족의 시초가 되는 족장들의 왕일 뿐만 아니라 열방의 (당시 애굽) 왕이 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나라를 지혜로 다스리는 모습이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모습을 미리 보여 주는 예표입니다.
창세기는 책 제목처럼 모든 것의 시초를 담고 있는 기원의 책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구원의 모든 스토리를 말씀을 통해 알고 있기에 구원의 드라마의 결론을 이미 알고 1막 1장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믿고 있는 복음을 더 의미있고 풍부하게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세계의 시작, 인류의 시작, 죄의 기원,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 및 주변 이방 민족의 시작에 대한 역사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를 통해 이 성경을 읽어왔던 이스라엘 백성들, 나라를 잃어버리고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할 때에도, 포로에서 돌아와 제2성전 시대를 살던 유대 백성들에게도 창세기는 그들의 뿌리를 알게하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경건한 백성들은 참 신앙 가운데 메시아를 기다리며 영원한 나라를 대망하며 주어진 하루를 감당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창세기의 역사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씨, 그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모든 성도들의 역사이기에 우리들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창 43-44장
1.
양식이 떨어지자 야곱은 어쩔 수 없이 베냐민을 형들과 함께 곡식을 사러 보냅니다. 요셉의 형들은 몰랐지만 야곱의 열두 아들이 모두 앉아 식탁 교제를 하는 모습 속에 용서로 인한 화목과 화평의 진수를 봅니다. 베냐민에게 5섯배를 더 주어도 시기하지 않고 모두가 즐거하는 모습 (43:34)이 천국 백성의 삶의 모습임을 깨닫습니다.
2.
요셉을 살해하고 팔아넘긴 죄책을 갖고 살아 온 형들은 요셉에게서 적어도 심정적으로는 죄값을 톡톡히 치루고 있습니다. 베냐민에게서 잔이 발각되어 다시 요셉 앞에 섰을 때 유다의 고백을 보면,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44:16)”. 죄인을 끝까지 추적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 드러내주는 대목입니다. 하나님 앞에 완전 범죄는 없습니다.
3.
43장부터는 열두 형제 중 장남인 르우벤이 아니라 유다의 지도력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실질적 장남의 역할을 합니다. 형제들의 안녕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마음과 행동은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을 떠 올리게 합니다. 49장에서 야곱이 유다에게 한 축복의 내용을 보면,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 규 (왕권)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49:8, 10)”. 야곱이 성령의 감동으로 한 예언적 축복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었습니다. 창 3:15절의 약속이 유다의 후손을 통해 나오는 왕인 다윗 왕을 거쳐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음을 복음을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창 45-46
1.
창 45장은 용서의 진수를 보여준다. 요셉의 입장에선 자기를 죽이려고 하고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그가 가진 권력으로 다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해도 형들은 할 말이 없다. 근데 피해자인 요셉이 더 크게 더 많이 운다. 그의 평생의 고통이 시간과 용서의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용서는 나의 상황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생각할 때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5)”.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의 삶과 요셉의 신앙에서 나온 삶에 대한 해석은 우리에게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며 살아가야할지에 대한 신앙의 원리를 준다.
2.
45:28절 & 46:30절에 참 눈물나는 감동의 순간이 나온다. 야곱의 마음에 이미 죽었던 아들을 다시 만난 건 야곱에겐 실제로 요셉이 부활해서 재회한 것이다. 분명 재림시 부활의 기쁨은 이것과 비교할 수 없다. 나는 부활시 사랑하는 남동생, 아버지를 야곱과 요셉처럼 다시 만나 목을 어긋맞춰 안고 한참을 기쁨으로 울것이다.
3.
46:7절까지 야곱의 가나안 생활이 종결된다. 8절부터는 애굽 생활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손이 작동되는게 너무 잘 보인다. 기근을 일으켜 결국 70인의 히브리 사람들 애굽으로 들여보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본다. 이후 최소 2백에서 4백만의 대민족이되어 애굽에 나와서 다시 이땅을 약속의 땅으로 취하기까지 이별이다. 인간의 관점에선 인간의 죄가 빚어내는 고통, 분노, 슬픔, 절망, 다툼, 속임, 음란등으로 점철된 역사지만 인간의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실 구속의 완성을 향해 한 스텝 한 스텝 약속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인자하심(헤세드, steadyfast love, everlastig love) 을 본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이땅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또 아무리 좋아도 모든 것은 성도의 죽음과 예수님의 재림에서 결정난다.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 하루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는 평안과 기쁨이 강물처럼 영혼 깊숙한 곳에서 샘물처럼 흘러 나리라!
“주님, 오늘 하루도 주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창 47-50
오늘까지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를 다 읽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구원 계시에 있어 씨앗과 같은 단계입니다. 씨앗이 심겨져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열매를 맺듯이 이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찬란한 꽃과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창세기를 알면 우리가 이미 믿고 있는 복음의 시작과 그 의미들을 더욱 풍성하게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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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라는 인물과 예수 그리스도와는 다른 점도 있지만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요셉이라는 인물의 삶과 성품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요셉은 무고하게 악한 자들로부터 고난 당하고 죽임 당하는 자리까지 갔지만, 하나님의 뜻과 섭리로 당시 열방의 실질적 통치자가 됩니다. 다윗이 그러했고, 예수 그리스도는 죄없으신 분이 악한 자들에게 고난당하고 죽임당하셨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셔서 만유의 주와 그리스도로 높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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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장에서 야곱이 12아들들과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예언적으로 축복하고 저주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성경 전체의 내용을 볼 때, 우리는 야곱의 예언이 어떻게 다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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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장에서 야곱이 유언을 남기고 죽습니다. 그의 전 인생은 고난과 죄악들로 점철되었지만,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소망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이 구원얻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보십니다.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주시고 많은 후손을 약속하신 그 약속을 마지막 호흡때까지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시키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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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장에서 요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유언 역시 자신의 유골을 조상들의 땅에 매장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셉 역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영원한 본향을 소망했던 믿음의 선진이었습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들은 야곱 족속이 어떻게 애굽으로 들어가는 지를 보여주며 출애굽기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내일부터 출애굽기를 읽어 나가겠지만, 들어갈 때 70인이었던 야곱 족속이 나올 때는 장정만 60만 (2백~4백만) 큰 민족이 되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 이스라엘을 잉태하는 책입니다. 애굽은 엄마의 자궁과 같은 역할을 하다가 마침내 출애굽을 통해 이스라엘을 출산합니다.
출애굽기를 읽기전 아래 링크를 눌러 10분짜리 리딩지저스 출애굽기 개관을 먼저 보시고 읽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