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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월 26일~3월 15일)

리딩지저스 민수기 개론 영상 시청하기
그리스도 중심으로 민수기를 읽기 위해 이해하고 있어야 할 필수 내용입니다. 꼭 시청하시고 민수기를 읽으시기 바랍니다.

민 1

장소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시내산 아래 광야에 머물러 있습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 시내산에 도착한 이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레위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고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만나 교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규정들입니다. 핵심적으로 성전과 성결한 삶으로 요약할 수 있겠죠.
출애굽한지 2년하고도 두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나기전 인구조사를 실시하게 하셨습니다. 그결과 20세 이상 전쟁할 수 있는 남자의 수가 603,550명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한 때 60만 대군이라고 했는데,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에 들어갈 때만 해도 70명이었던 족속이 60만 대군이니까 못해도 2백만~4백만의 인구를 가진 강국이 되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을 통해 거대한 민족을 배태시킨 것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의 능력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은 후손을 주셨습니다. 이제 약속의 땅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민 2-3

2장에서는 60만 대군의 진 구축과 행진 대형에 대한 세부 사항인데, 정말 감동적입니다. 어떤 적국과 싸워도 이길 수 있을 만큼 잘 조직되고 일사분란한 군대 그 자체입니다. 여기서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는 하나님의 전쟁임을 시사해 줍니다. 근데 그 전쟁의 중심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막(성전) 이 있고, 제사장 그룹과 성막에서 봉사하는 레위 족속이 센터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전쟁은 거룩한 영적 전쟁이며 믿음의 싸움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천상의 교회를 승리한 교회라고 하고, 지상의 교회를 전투적 교회라고 하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까지는 지상의 교회는 끊임없이 머리가 깨어지고 (창 3:15) 퇴각하는 사탄의 세력들과 싸우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영적 전쟁 가운데 있기 때문이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의 영적 싸움을 위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라” 고 말을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민수기 2장과 3장을 그림으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민 6: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이 부분은 아론의 복이라고 일컽는 제사장의 축복입니다. 아론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복을 기원하는 겁니다. 예배시 ‘강복 선언’의 근거중 하나로 삼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27)

민 7

모세가 회막을 완성한 후 12지파의 지휘관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막을 중심으로 진 친 대형을 따라 차례대로 드린 헌물의 내용입니다.

민 8

성막 안의 어둠을 밝히는 등잔대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되신 그리스도를 예표함과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빛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말씀입니다 (8:1-4)

민 9

애굽에서 나온지 일년 1개월째이니까 시기적으로는 1장 인구 조사보다 앞에 일어난 일입니다 (9:1)
9:15-23 부분을 통해 신앙 생활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명령과 신호를 따라 (구름) 회막을 쳤다가 다시 거두었다가를 무수히 반복하며 광야의 여정을 지나갔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번거롭고 귀챦은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일상의 반복에 순종하며 나아갔다.
일상의 지루하고 번거롭고 반복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신앙 생활의 에센스입니다.

민 10

35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 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민수기 10:35–36)
드디어 회막을 완성한 후 시내광야를 떠납니다. 잘 훈련된 정예부대처럼 조직적으로 위용을 떨치며 행진하는 모습은 가히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약속에 신실하심의 현현입니다.
궤(증거궤,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죄사함의 장소입니다. 35,35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분리 되어 있음을 알게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에게 이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토록 허나님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시며 주가 동행하십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복됨입니까?

민 11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이스라엘 원망의 원인은 그들 가운데 살던 이방인들이었다. 성도가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문화와 가치관에 동화되지 않도록 늘 주의하고 깨어 있어야 할 이유이다.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하나님이 매일 베푸시는 일상의 기적에 감사하는 대신 불평과 원망으로 바꾼 패역한 하나님의 백성들. 너무나 당연시하는 하루의 일상에 늘 감사하며 살자.
11-12절: 인간 중보자의 연약함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중보자이셔서 결코 자기 백성을 이끌며 모세처럼 하나님께 한탄하거나 두려워서 낙담하여 항의하지 않으셨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의지한다.
18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이스라엘의 패역함의 핵심이다. 구원받기 전 세상에서 (애굽) 즐기고 누리던 때가 훨씬 좋사오니, 설령 자유를 박탈당한채 살아가는 노예생활일지라도 그때로 돌려 달라는 어처구니 없는 마음때문이다. 후회 가득한 불평, 원망과 반역이다.
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모세의 이 말은 실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성취된다.
33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34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기브롯핫다아와 (탐욕의 무덤)이라는 지명이 모든 걸 설명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영향을 받아 탐욕하던 것을 얻었다. 그러나 그걸 입에 문채 하나님의 진노로 죽었다. 탐욕이 반역과 죽음의 원인이었다. 10계명의 열번째 조항이 탐욕 금지이지 않던가! 늘 내 마음을 샆려야 한다. 탐욕으로 내 무덤을 만들지 말자.

민 12-16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기 위해 제공하신 회막의 완성과 함께 구름에 덮인 영광의 순간이 지나자 마자 11장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함과 불순종의 연속이다.
12장에서는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의 직분을 시기, 질투하여 비방하다가 미리암이 나병에 걸리는 벌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특별한 존재임과 그의 권위를 확증하신다. 모세를 비방한 자가 이렇게 하나님의 벌을 면하지 못했다면, 하물며 모세와 같은 선지자, 모든 선지자의 궁극적인 인물이자 새로운 모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방하거나 그분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어떻겠는가!
13-14장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광야 1세대를 모두 죽게한 반역 스토리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와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눈 앞의 현실에 압도되어 두려움 가운데 모세를 원망하고(하나님을 원망한 것과 동일) 죽이려 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다음 세대를 통해서 약속을 지키실 것을 그래도 남겨 두심으로 하나님의 헤세드(인자하심, steadfast love)을 지키신다. 60만 대군중에 여호수아 (호세아)와 갈렙 딱 두 사람만이 약속의 땅을 밟고 나머지는 모두 광야에서 죽는 이스라엘의 비극적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의 원망의 내용이 가히 참담하다. 노예생활 그냥하게 놔 두지 왜 구원해 주셨냐고 하나님께 삿대질 하는 것이다. 현실의 문제로 구원자체를 부정하는 자들이다.
14:18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진노하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모세의 기도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전형적인 중보자의 모습이다.
15장에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여호와께 드리는 헌물에 대한 규정들이다.
30-31절에 고의로 짓는 죄에 대한 형벌 규정이 나오는데… 알고 짓는 죄는 마음에서 여호와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인 줄 알면서도 아무 거리낌없이 반복해서 죄를 짓는 다면, 그 자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커녕 하나님을 멸시하는 마음이 들어 있는 것이다. 아니 하나님이 없는 자이다.
16장 역시 반역의 스토리이다. 레위 자손중 고핫의 손자 고라와 르우벤지파의 다단, 아비람, 온이 당을 짓고 (250명의 리더들) (16:1) 모세와 아론의 직분과 권위를 시기하여 반역을 하였다. 성막에서 섬기는 고라 자신의 사역의 고귀함을 보지 못하고 남의 것이 더 크고 좋아 보였던 것이다. 무서운 형벌을 받았다. 땅이 그들과 그들의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하나님을 반역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중하고 무거운 것인가를 예제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재앙을 목도하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다. 진짜 가망없는 인간 존재들이다. 이방인들도 아니고 그렇게 수 많은 기적들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이 보낸 사역자들을 멸시하는 걸 보면 참으로 대담하기 그지 없다.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역사가 있지 않는 한 이들 스스로는 개선될 기미가 전혀 없다. 소망이 없다.

민 17

그 유명한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사건이다. 12지파 중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나고 살구 열매가 맺힘으로써 아론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임을 확증해 주셨다. 마른 지팡이에서 생명이 자라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생명의 주임을 알게 한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죽은 마른 시체와 같은 우리들의 영혼에 움이 돋고 순이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리게 하셨다 (8).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께 믿지 않은 영혼을 구원해 주시도록 계속 간구하자.

민 18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 그들이 받을 몫에 대한 규정이다. 레위인들은 땅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받을 땅이었다 (기업).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는 지파였다. 신약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이 레위인들의 삶과 같다. 그러니 일상에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의 나라를 구하며 사는 것이 복있는 자의 삶이다.
마태복음 6:31–33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19절에 소금 언약에 대한 설명
팔레스타인에서는 협정을 확정하는 것으로 소금을 사용했다. 이때 소금의 역할은 부패나 짠맛을 내는 역할이 아니라 견실함과 영구함의 상징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소금은 언약과 함께 나온다.
여기서는 제사장이 받는 보수 규정이 영원한 규정임을 강조하는 것.
레 2:13 에서는 소제 드릴 때 소금을 쳐야 했는데 이걸 ‘언약의 소금’ 이라고 굴렀으며, 출 30:35에서는 성소에서 사용하는 향을 만드는 재료 중의 하나로 기록함.
요약해서 구약시대엔 소금이 언약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

민 19

하나님을 원망하고 반역함으로 부정하게 된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여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하는 규정이다. 부정한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은 물로 씻는 것이다. 디도서에서 성령으로 우리가 정결하게 된 것을 “중생의 씻음” 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 이라고 바울이 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부정에서 정결로 죄 씻음받고, 반역하는 마음이 새로운 마음으로 바뀐 것 (Renewal) 에 대한 외적인 표와 인이 세례입니다 (물을 뿌리든, 물에 잠기든).
디도서 3:5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민 20-21

이스엘의 광야 생활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역사입니다. 벌써 몇번째 입니까? 20장에서, 21장에서 원망에 원망을 거듭하며 패역함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불평들을 쏟아 놓습니다 (20:2-5; 21:5). 반역한 이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지만, 그 가운데 은혜베풀기를 멈추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심이 한량없으신 하나님의 성품이 더 더욱 돋보입니다.
20장에서 모세는 반석에게 명령하는 대신 화가 나서 반석을 치는 안타까운 불순종으로 그토록 밟기 원했던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결정적 범죄를 하고 맙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반석에 비유합니다. 물이 없어 갈할 때 반석에서 물을 내셔서 이스라엘을 먹였던 하나님께서 반석되신 그리스도에게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 되신 성령을 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성찬을 통해 떡과 잔을 통해 먹고 마심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나오는 영혼의 음료를 지금도 믿음으로 마시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의 의미때문에 매월 가지는 성찬식이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21장 5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한 이유가 어처구니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이 얼마나 망령된 말입니까? 우리의 삶을 많이 돌아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은혜를 베푸셨건만 우리는 자주 현실의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아니 현실에 특별한 뭐가 없을 때 마다 그것을 ‘하찮은 것’ 으로 치부하고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는지 깊이 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반역한 이들을 불뱀으로 심판하시지만, 살 길을 주십니다.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아 그것을 쳐다 보는 자마다 살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21:8-9)
이 불뱀을 쳐다보면 살 수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쳐다보는 것이 구원얻는 믿음입니다. 뱀을 올려다 보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거저 받아들이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자신이 바로 광야에서 들린 놋뱀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는) 자는 죄 사함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민수기에도 온통 <복음>이 선포되고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민 22-24

네 장이라는 긴 분량이 발람과 관련된 이야기로 할당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창대하며 얼마나 여호와께 복을 받은 민족인지를 발람의 예언을 통해 확증하는 것입니다.
모압 왕 발락과 발람사이에 옥신 각신하는 과정이 흥미롭고 특히 발람의 심리적 추이를 따라가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선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부어 주시는 택하심과 약속에 신실하시는 인자하심때문에 이들이 복받은 백성입니다. 저주하려고 하면 할 수록 발람의 입에서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축복의 축복을 선포하는 장면은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24:17 , 19절에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조쪽가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발람의 이 예언은 다윗 왕과 솔로몬 왕국에서 일차적으로 성취되나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됩니다. 그리스도는 왕위는 영원하며 흔들리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열방을 통치하는 온 세상과 만물의 주권자이십니다. 그분과 함께 왕노릇하는 우리의 신분이야 말로 얼마나 영광된 것입니까!

민 25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에 이어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싯딤에서 우상숭배를 하며 영적, 육적 간음을 저지릅니다.
여기선 발람의 악행이 언급되지 않지만 31:16절에 보면 바알브올에서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의 음행을 한게 발람의 꾀를 따라 범죄하였다고 했습니다.
신약 성경 두 군데서 발람의 악한 행위를 평가합니다.
유다서 1:11에서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벧후 2:15-16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 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민 28-29

각 절기들에 드려야 할 희생제물에 대한 규정입니다.
안식일과 성회로 모이는 날의 핵심은 제사와 안식을 위해 노동을 쉬는 것입니다. 신약 백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이 성취되었으므로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자의 삶 가운데 절기때 모든 백성이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기 나왔듯이, 신약의 백성들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인 주일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 (형식있는)하며, 노동을 쉬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7일째 안식하셨던 창조의 하나님과 죄와 사망 가운데 우리를 구속하신 구원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다시 기억하며 말씀을 듣고 찬송하고 기도하며 성도의 교제를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교회는 역사 속에서 존립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겁니다. 주일에 교회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된 안식을 현재적으로 주의 백성들과 함께 누리며, 영원한 안식의 날을 소망하는 것이 주일을 바르게 지키는 자세일 것입니다
아래 도표가 복잡해 보이는 규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민 30

서원에 관한 규정입니다.
규정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한 속성이 잘 드러납니다.
집안의 자녀들과 아내의 서원에 대해 아버지와 남편에게 맡겨 주신 것은 가정의 질서를 보여 줍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그대로 재연되지요.
저도 대학생때 어떤 집회에서 연변과기대 선교사가 되겠다고 자원하고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서원때문에 마음에 짐을 지니고 다닌 적이 많았기에 성경에 나오는 서원 규정을 볼 때마다 더 유의해서 보게 됩니다. 나중에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지만, 서원 규정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그 원리적인 측면은 꼭 간직해야 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솔하게 서원하거나, 분위기나 강요해서 서원하게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께 ‘예’ 면 ‘예’, ‘아니면’ ‘아니오’ 라고 말하고, 하나님께 이것을 해 주시면 제가 이것을 하겠습니다는 식의 서원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과 일종의 거래를 시도하는 나쁜겁니다. 구약에서는 종종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약 백성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중국 연변 과기대 선교사는 아니지만 시드니에서 목사로 사역을 하고 있네요.

민 3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는 명령과 그것을 실행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큰 승리와 전리품 분배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때 발람도 죽임을 당합니다.
16절에 분명히 모압 싯딤에서의 범죄는 ‘발람의 꾀를 따라’ 범죄하여 염병으로 죽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범죄한 자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을 보게됩니다.

민 31-36

31장 에서부터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반역과 우상 숭배로 인한 불평, 원망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등 어둡고 부정적인 면들이 31장부터 긍정적인 국면으로 변화됩니다. 이스라엘을 꾀어서 하나님 앞에 음행하게 했던 미디안으 무찌르고 많은 전리품을 획득하는 승리를 이룹니다.
32장은 31장에서의 승리에서 획득한 땅과 재산때문에 이스라엘중 세 지파가 남기로 결정합니다. 그들에겐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까지 기다리기 보다, 지금 정복한 땅이라도 먼저 차지하는 것이 삶의 최고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33장에선 애굽에서부터 광야 2세대들이 서 있는 모압까지의 이스라엘의 여정에 대한 기록입니다. 삼일만에 갈길을 40년동안 군대식 용어로 뺑뺑이를 치며 살았습니다.
33장 뒷 부분부터 35장까지는 땅 분배와 경계에 대한 규정들인데, 모두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후에 대한 것입니다. 기
36장에서 마지막으로 슬로보핫 여인이 자기 종족에게만 시집가서 자기 종족의 땅을 보존하나는 규정입니다.
민수기의 히브리어 원제는 “광야에서”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에서 약속의 땅까지의 광야의 여정이 “In Between” 이듯,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의 죄와 사망가운데서 출애굽한 성도의 삶 역시 천성을 향해 가는 광야의 삶이고 순례자의 길입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를 거울 삼아 불순종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죄악가운데 빠져 있을 때마다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무에 달리 불뱀을 보고 살았던 것처럼, 나무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죄 사함 받고 영혼의 온전한 치유를 경험하며 살아가야 겠습니다.
민수기의 광야 여정과 이스라엘과 우리와의 관계를 그려보았습니다